우연한 기회에 어떤 회합에 참여했다가 자기의 경험·지식, 생활 TIP을 여러 사람들에게 공유하는 프로그램을 한 적이 있다. 그때는 내가 다른 사람들과 나눌만한 게 없다고 생각을 하였는데 지금에 와서 문득  '한글'에 대해서라면 내가 몇 마디 이야기 하고픈 내용이 있음을 생각해 냈다. 평소 테레비나 인터넷에서 우리말과 우리글 얘기가 나올 때마다 한 마디 거들었으면 했던 생각들이 있다. (어쩌면 이 생각들이란 게 보통사람의 작고 얕은 이야기일 수도 있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이야기를 다시 중언부언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를 읽는 이들에게 먼저 너그러운 양해를 구한다.) 짧고 조잡한 글솜씨로나마 두서없이 몇 차례 적어본다. 

 

 오래 전부터 매스미디어(mass media)에서 우리 말글 이야기를 다룰 때  한국어와 한글을 구별하지 못하고 뒤죽박죽 섞어 쓰고 있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대표적인 게 케케묵었건만 되풀이되는 '국한문(國漢文) 혼용'과 '순한글 전용' 논쟁이다. 본질은 우리말인 한국어에 있는데 논쟁은 이름처럼 '문자표기방식' 문제로 삐딱선을 타다보니 논쟁의 내용도 한국어와 한글의 개념이 혼재한 채 유익함이 없는 논박으로 그치기 쉽상이다. 또, 한글날이면 으레 신문기사, 칼럼과 TV방송 프로그램에서 하는 이야기, 외국인의 한국관광이나 다문화가정의 일상을 소개하는 유튜브에서 광화문 세종대왕상을 구경하다가 꺼내는 이야기가 한글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한국어를 이야기하는 것인지 헷갈릴 때도 많다.

 

한국어와 한글은 다르다. 당연한 얘기지만 한국어는 말이고 한글은 글자다. 한글이 만들어지기 훨씬 전부터 한국어는 이미 사용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 당연한 상식조차 혼동되는 세상이 된 거 같다. 그러다보니 일본식 한자말과 인터넷 줄임말, 외국말 남용 등이 난무하는 언어생활도 순한글로만 읽고 쓰면 저절로 우리말 사랑이 되는 줄 아는 게 아닌가 싶다.

 

제도권(행정, 법률, 언론, 교육, 도서·출판 등등)에서 자주 쓰는 말과 글에는 민초들이 평소에는 잘 쓰지 않는 일본식 한자말이 많다. 행정민원서식이나 법률조문이 아무리 순한글로 되어 있어도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이뿐만 아니라 주변에서 쉽게 접하는 TV방송이나 인터넷에서 사용하는 말과 글은 '-은,-는,-이,-가' 같은 조사나 '-하다'정도의 말을 빼면 거의 한자말이나 영어 등을 이용한 명사형 단어들로 나열된 느낌을 많이 받는다. 주류사회에서 우리가 쓸 수 있는 한국어가 그렇게 빈곤한 것일까?

 

내가 어렸을 때 한국어를 첨가어, 교착어 운운하며 알타이어족에 속하는 언어라고 배웠다. 그러면서 한국어의 특징으로 꼽은 것이 동사·형용사 같은 용언과 의태어·의성어 같은 부사의 발달이었다. 이는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의 증언에서도 자주 드러난다. 일례로 '맵다'라는 말을 영어에서 'hot'이나 'spicy' 정도로 표현할 때 우리는 '맵다, 매콤하다, 얼큰하다, 칼칼하다, 알싸하다, 얼얼하다, 아리다...' 등 여러가지 어감으로 표현하는 낱말이 많다. 의태어와 의성어를 보더라도 '화들짝, 폴짝, 성큼성큼, 알콩달콩, 쩝쩝, 짭짭, 살랑살랑, 맨들맨들, 도란도란, 왁자지껄...' 처럼 다양한 표현을 가지고 있다. 이런 우리말 고유의 장점을 잘 살려쓸 수는 없을까?

 

90년대에 대전에서 엑스포(EXPO)라는 국제적인 행사를 할 때에 '도우미'란 말이 처음 생겨났다. 행사를 기획하고 주최하는 엘리트들이 만들었을 것인데 '젊은이, 늙은이, 어린이' 같은 우리말을 생각하면 이는 어법에 맞지 않는 잘못된 말이다. 우리말 어법대로 한다면 '도우미'가 아니라 '돕는이/도울이' 정도가 되어야 옳다. 반면에 90년대에 유행하던 물건인 무선호출기를 부르는 이름인 '삐삐'가 있었다. 무선호출기의 호출음인 의성어 '삐삐'가 물건 이름이 된 것인데 어디서 만들고 시작한 이름인지 몰라도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무선호출기 이름이었다. 아마도 우리말의 특성을 잘 살린 까닭에 민초들 사이에서 자연스레 사용빈도가 높아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지나온 역사와 사회의 변화에 따라 언어생활이 영향을 받는 건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 변하는 세태가 본래 가진 우리말 표현을 잠식하고 우리말 장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채 우리말 어법을 자꾸 망가뜨리고 있다면 그건 문제가 아닐까?

 

【출처】 Unsplash 의 Mathew Schwar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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