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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의 목소리

글쓰기/낙서 2020. 4. 17.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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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23호

세계 77억 인간들 중에 하나, 사람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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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포스트는 2019년 4월 13일에 쓴 글을 재업로드하였습니다.

 

'기본소득'을 주제로 다룬 시사IN 제468호와 한겨레21 제1212호 표지

 

기본소득 (필자 주|基本所得: unconditional basic income, Citizen's Income, basic income guarantee, universal basic income, universal demogrant)은 국가 또는 지방자치체(정치공동체)가 모든 구성원 개개인에게 아무 조건 없이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소득입니다.

기본소득은 세 가지 점에서 기존 생활보장제도와 다릅니다. 첫째, 기본소득은 보편적 보장소득입니다. 즉 국가 또는 지방자치체(정치공동체)가 모든 구성원들에게 지급하는 소득입니다. 둘째, 무조건적 보장소득입니다. 즉 자산 심사나 노동 요구 없이 지급하는 소득입니다. 셋째, 개별적 보장소득입니다. 즉 가구 단위가 아니라 구성원 개개인에게 직접 지급하는 소득입니다. 
▶출처: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BIKN)

 

기본소득제도가 대한민국에서 실현된다면 우리사회는 어떻게 달라질까?

① 인간의 기본생존권을 보장한다.
어느 시민단체의 주장에 따르면 한국사회에서 기본소득제도를 지금 당장 실행한다면 한 사람 당 30만원 정도의 기본소득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한다.

만약 나에게 매달 30만원의 기본소득이 주어진다면 정말 많은 삶의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 아니, 5만원만 생겨도 삶에 큰 보탬이 될 수 있다.

가령, 라면을 산다고 치자. 보통 라면의 시중가격이 아주 저렴하거나 비싼 것을 제외하면 5개들이 한 팩(PACK)에 3,000~4,000원 하니까 3~4만원이면 50개의 라면을 살 수 있다.

먹을 것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도 하루에 한 번 이상 라면으로 허기를 달래며 한 달을 버틸 수 있다. 굶어죽는 일과 같은 극단적인 비극에까지 이르지는 않는다. 단돈 5만원으로 최소한의 생존권을 보장하는 셈이 된다.

② 인간의 사회관계를 확장한다.
기본소득으로 돈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사회활동이 늘어나고 사회와 접촉면이 넓어진다. 가정의 테두리를 넘어선 새로운 사회적 경험과 다양한 인간관계 형성의 기회가 주어진다.

나 같은 경우, 기본소득을 휴대폰이나 인터넷 요금으로 사용할 수 있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는 자리에 나가서 그들과 사는 얘기,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누며 회포를 풀 수도 있고 공공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오다가 카페에 들러 차 한 잔 마시는 여유를 즐길 수도 있다. 머리를 깎으려고 동네 미용실에 갈 수도 있고 집안에 못 고치고 내버려뒀던 생활소품을 새로 사려고 시내 대형마트로 외출할 수도 있다. 아니면 평소 갖고 싶었던 물건을 온라인으로 주문할 수도 있다. 하다못해 돈이 없어 자주 못가던 동네마트를 몇 번 더 다녀올 수도 있다.

이렇게 집밖을 나서서 버스를 타고 거리를 오가며 사람들과 부대끼는 경험을 통해 지치고 무기력해진 삶의 태도를 환기할 수 있다. 

③ 자유·평등·연대의 사회가 가능해진다.
기본소득을 최저생계수준으로 보장할 수 있다면 사회가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다.

몇 가지를 상상해 보자.

i) 모든 사회구성원의 기본생존권이 절대적으로 보장되면 생계에 목이 매여 어쩔 수 없이 불의에 타협하거나 굴욕적 복종을 강요받지 않아도 된다. 힘센 자·가진 자의 비리, 갑질횡포, 조직의 불공정하고 불합리한 질서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ii) 사회의 갈등을 줄이고 조정하는 힘이 커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정부의 공익사업과 개인의 재산권이 충돌하는 문제나 노사정(勞使政)같은 사회적 대타협기구에서 다루는 난제들도 사회가 개인의 최저생계를 기본적으로 보장하면 첨예한 대립보다는 양보와 타협의 가능성이 커지고 원만한 해결을 도모하게 될 것이다.

iii) 사회구성원의 건강 수준이 높아질 것이다. 건강을 위협하면서까지 장시간 강도 높은 노동에 매달리지 않아도 되고 병원에 갈 돈이 없다는 이유로 병을 악화시키는 일도 사라진다. 또 사회구성원들이 건강관리에 신경쓰게 되면 공공의료보험의 재정부담도 크게 줄어들 것이다.

iv) 사회의 문화와 가치관이 바뀔 것이다. 사회 모든 구성원의 기본적인 생존권이 보장되면 돈과 물질이 아닌 사람의 인격과 됨됨이를 중시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정의로운 사람, 덕 있는 사람, 타인의 삶에 공감하고 의리를 지킬 줄 아는 사람이 존중받고 대접받는 사회가 될 것이다.

v) 집단지성의 힘이 발휘되는 민주주의 사회를 꿈꿀 수 있다. 노동에 얽매이는 시간이 줄어들면 개인의 삶과 사회에 대해 주체적으로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길 것이다. 인생에 대한 통찰과 사회적 시선이 깊어지면 정치권력·언론·학계의 권위가 만들어내는 정치 프레임과 논리에 휘둘리지 않는 비판적 사고가 가능해질 것이다. 그리고 사회구성원 각자의 자유로운 창의성과 생각들이 강력한 집단지성으로 고양될 때 자유·평등·연대의 민주사회가 도래할 것이다.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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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77억 인간들 중에 하나, 사람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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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양정에 올라 바라본 소양강변 풍경

집 가까운 곳에 소양정(昭陽亭)이 있다. 산책이나 운동삼아 걷기엔 안성맞춤인데 오랜만에 이 곳을 찾는다. (이렇게 좋은 풍광을 가까이 두고도  자주 못 찾는 건 평소 불안과 무기력에 짓눌려 사는 내 가난한 마음 탓이리라.)

 

집에서 10~20분 걸어가면 소양정을 오르는 돌계단 입구에 이른다. 입구 옆에는 친일파 이범익 단죄문을 비롯한 비석군(碑石群)이 있다.

 

오늘(26일)은 비석군 주위를 새롭게 가꾸는 모양이다. 사내 서넛이 있는데 한 쪽에선 팔을 걷어 붙여 삽질을 하고 다른 쪽은 측량기를 옆에 놓고 무언가를 의논중이다. 

 

돌계단을 몇 차례 밟고 소양정을 오른다. 제 몸을 방 안에만 가두고 사는 늙고 약해빠진 샌님은 고작 계단 오르는 일에도 숨이 거칠어졌다.

 

계단 맨 꼭대기 마지막 단을 밟고 올라서자 탁트인 소양강변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눈앞에 나무들 너머로 소양강 강줄기, 하늘색과 분홍색으로 칠해진 소양2교, 흰색의 강변 아파트가 모두 보인다.

 

가빴던 숨이 고르게 잦아들자 소양정 사방을 천천히 둘러 본다. 익히 몇 번 왔던 곳이지만 되새김질 하듯 새삼 주변을 구경한다.

 

소양정 전경

소양정 바로 옆에 누각의 내력이 적힌 안내문이 있다. 안내문은 간단하게 말하면 이렇다. 이요루(二樂樓)라고도 불리는 소양정은 이미 고려시대 문헌에 등장하는 누각으로 조선 인조 때 춘천부사 엄황이 정자를 수리하면서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조선시대 때 홍수로 잃은 것을 한번, 한국전쟁 때 불에 타서 없어진 것을 다시 원래 있던 데서 옮겨 1966년에 지금 여기에 새로 지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때 춘천을 두 번이나 다녀간 다산 정약용의 흔적도 남아 있다. 다산의 춘천여정을 추억하는 다산길과 그의 소회를 적은 시문 가운데 한 편을 소개한 안내문이 그것이다.

 

소와 말은 나룻가에 서 있고

모래톱 물 다시 잔잔해지는데

풍경은 도읍에 가까워지자

넓게 트이어 험난한 곳 없고

강이 둘러싼 정자 성대하며

산은 멀고 평평한 들 넓구나...

 

다산길 안내문 (소양정 앞)

소양정이란 정자 하나를 둘러싼 풍경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1945년과 1950년의 역사 한 순간도 기록하고 있다.

 

1945년의 일은 '윤공용성영세불망비'다. 비석에 새겨진 이름의 뜻은 '윤용성 공(公)의 영세를 바라고 그를 잊지 않기 위해 세운 비석' 정도 되겠다. 1971년에 쓴 안내문에는 중앙초등학교 전신인 '춘주학교'라는 사학을 세운 윤용성이라는 사람을 기념해 1945년 학교 학부형들이 봉의산록에 세운 것을 이 곳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다른 하나는 1950년 6·25전쟁 중 소양교를 넘어오는 북한군과 교전했던 '공병중대전적지'다.  6·25전쟁이 일어나자 6사단 7연대에 소속된 공병1중대는 보병 지원을 위해 대부분 출동하였고 남은 1개 소대병력이 지금 위치에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전차를 앞세운 북한군에 맞서 소총과 기관총으로 격렬하게 싸웠다고 한다.

 

윤공용성영세불망비 /  공병중대 전적지 (왼쪽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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