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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흔히 말하는 '어록(語錄)'입니다. 그런데 '이오덕 어록'으로 하기에는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더 알맞은 말이 없을까 궁리한 끝에 '말꽃'이 가장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오덕 선생님 말씀 가운데서 꽃처럼 돋보이는 말씀을 간추려 놓았다는 뜻입니다. 이런 뜻으로 '이오덕 말꽃'이라고 이름 짓게 되었습니다.   

- 《이오덕 말꽃모음》 (2014) 중  펴내는 글에서

 

내가 처음 읽은 이오덕 선생님의 책은 '우리 말글 바로 쓰기'에 관한 책이었다. 한길사에서 만든 《우리글 바로쓰기》 시리즈가 나오기 전에 비슷한 내용의 책이었는데 책이름은 잊어버렸다. 책이 나온 지 한참 지나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나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내가 배우고 익힌 글의 상식 · 말글 지식을 완전히 뒤엎는 큰 가르침처럼 느껴졌다.

 

그 책에서 내가 기억하는 이오덕 선생님의 맡씀은 이랬다. 글은 작가처럼 특별한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글짓기'가 아니라 '누구나' 자기 삶을 정직하게 표현하는 '글쓰기'다. 좋은 글일수록 삶이 우러나는 글이고 삶이 우러난 글은 민중이 일상에서 쓰는 익숙한 말로 되어서 쉽고 간결하다. 선생은 김유정의 소설들을 좋은 글로 꼽았다. 반면, 박태원의 『천변풍경』을 지식인이 멋부리는 글솜씨로 지은 글이라고 평했다.

 

일본식 한자말, 영어식 표현, 인터넷 줄임말, 우리말 어법에 맞지 않는 신조어 따위가 우리 언어생활에 얼마나 깊게 침투해 있는지도 지적하였다.

 

오랜만에 이오덕 선생님 책을 찾아보기로 했다. 동네에 있는 시립도서관으로 갔다. 도서관에 가기 전에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생각해 둔 책이 있었다. 그런데 집으로 빌려온 책은 이 책 《이오덕 말꽃모음》이었다. 생각해 둔 책을 찾다가 예쁜 연두색 표지로 된 이 책이 눈에 띄었다.

 

200쪽 정도의 분량에서 40여 쪽을 읽었다.

 

간결한 글의 말투가 인상적이다. 딱 부러진 생각에 주저함이 없다고 할까? 이오덕 선생님은 생전에 신문을 읽다가 우리 말글의 오용(誤用)을 발견하면 그 기사를 쓴 기자가 근무하는 신문사로 직접 찾아가셨다는데...  그런 삶의 태도를 가진 분이 하는 말의 무게가 느껴진다.

 

우리가 옳게 살려면 한 가지 각오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착하게 살고 정의롭게 살고 인간답게 사는 길은 지금 봐서는 가난하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 《이오덕 말꽃모음》 (2014) 중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

 

사람은 일을 하는 가운데서 세상의 모든 이치를, 사람다운 감정을 몸으로 배웁니다. 몸으로 익히게 하는 것, 이것이 진짜 교육이지요. 책을 읽고 머리로 배우기만 해서는 병신이 됩니다. 이런 병신은 병신 된 그 사람만 불행한 데 그치지 않고 사회에 그 해독을 아주 크게 퍼뜨립니다. 우리 교육은 온통 병신 인간만 만들어내고 있다고 보는데, 지나친 생각일까요?

- 《이오덕 말꽃모음》 (2014) 중 「병신 만들기 교육」

 

여러분은 공부하기를 좋아합니까? 일하기를 좋아합니까? 교실에서 청소하는 어린이들을 보면 아주 장난을 치면서 재미있게 합니다. 일을 놀이같이 하는 어린이들은 참으로 슬기롭고 훌륭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놀이처럼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 놀이처럼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공부, 이렇게 되어야 사람에게 이로운 일이 되고 참공부가 됩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일을 괴로운 것으로 만들어놓았고, 그래서 일하기가 싫도록 해놓았어요. 어른들은 모두 바보입니다.

- 《이오덕 말꽃모음》 (2014) 중 「놀이와 일과 공부」

 

 

▣ 뒤적거린 책|

《이오덕 말꽃모음》, 이오덕 글, 이주영 엮음, 단비 (2014.12.10 초판 2쇄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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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을 위하여》라는 책 서문에는 저자 강신주 씨가 한 대학 강연에서 겪은 이야기 하나가 소개된다.

 

강연에서 저자는 '김일성 만세'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김수영 시인의 미발표작 한 편을 먼저 읽었다고 한다.  그러자 저자의 강연을 들으러 온 수많은 관객의 표정에 당혹감과 불쾌감이 내비쳤다고 한다. 저자는 관객들의 이 반응을 불안심리로 해석했다. 반공을 국시로 알고 북한을 우리 사회의 적대세력으로 수십년 간 배우고 살아온 우리나라 사람들이, 심리적으로 체제 경계선에 놓일 때 느끼는 두려움과 불안함. 저자가 시의 의미를 설명해주고 시를 쓴 사람이 한국현대문학에서 큰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김수영' 시인임을 밝히고 나자 그제서야 청중들의 표정이 밝아지고 안도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저자 강신주 씨는 이 경험을 통해 냉철한 자유정신을 가졌던 시인 김수영의 존재에 자랑스러움을 느끼는 동시에 그의 시로부터 50년이 지난 현재까지 우리의 감수성이 그의 인문정신조차 쫓아가지 못하는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했다.

 

청중들이 안도하는 모습을 보자, 나는 마음이 너무나 무겁고 괴로웠다. 김수영이 시를 쓴 지 5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내면은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에 너무나 허탈했다.            

-강신주, 《김수영을 위하여》 중에서

 

그 때문일까? 우리 사회는 약육강식과 금권만능주의가 판을 치는 가운데 자유정신과 비판정신을 가진 살아있는 지식인의 목소리는 점점 더 들리지 않는 것 같다. 주류사회가 죽은 지식을 답습하며 그들만의 학벌을 쌓는 데만 열을 올리는 사이에 학문과 지식의 권위는 땅에 떨어져 유튜브나 팟캐스트의 정직한 욕설보다 못한 신세가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닐는지.

 

'김일성 만세'/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을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언론의 자유라고 조지훈이란 시인이 우겨대니// 나는 잠이 올 수밖에// '김일성 만세'/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을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정치의 자유라고 장면이란 관리가 우겨대니// 나는 잠이 깰 수밖에.      

- 김수영 '김일성 만세' (1960) 전문, 《프레시안》 2012년 7월 2일 기사 재인용

 

▣ 뒤적거린 책|

《김수영을 위하여》, 강신주 지음, 김서연 만듦, 천년의 상상 (2012.04.23 초판 1쇄본)

 

▣ 참고자료|

- 한겨레신문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286773.html

- 프레시안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no=67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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