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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전증 (EPILEPSY)|출처:Pixabay

 

간질, 뗑깡, 지랄병

간질 (癇疾), 뗑깡 (てんかん, 癲癇), 지랄병이라고 부르는 뇌전증(EPILEPSY)은 어떤 병일까? 내가 아는 상식 선에서 간단히 설명한다면 '뇌에 전기적 이상신호로 뇌 전체가 일시적으로 마비되면서 경련발작을 일으키는 병' 정도로 정의할 수 있다.

 

나는 고등학교 일 학년 때 처음 경련발작을 일으켰다. 집에서 아침 운동을 하다가 의식을 잃고 쓰러졌는데 학교에서 같은 반 짝꿍이 알려준 다리 운동을 해보려다가 그랬다. 내가 다시 의식을 회복하고 눈을 떴을 때 내 몸은 안방에 누워 있었고 어머니가 옆에서 아주 걱정스런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이후 고등학교 야간자율학습시간에 엎드려 자다가 쓰러지기도 했고 대학도서관에서도, MT에서도 경련발작으로 쓰러졌다.

 

경련 후유증은 두통, 구토감

경련발작으로 의식을 잃고 한참 후에 일어나면 나는 심한 두통과 구토감에 시달렸다. 발작 일으킨 그날 하루는 계속 잠을 자는 게 가장 좋은 처방이었던 거 같다. 그렇게 하루를 충분히 자고 나면 다음날은 후유증 없이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했다. 어머니는 내가 발작으로 쓰러지면 청심환(씹는 거든, 마시는 거든 상관없이)을 먹이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정말 효과가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위약효과였을 수도 있다. 어쨌든 내게 주신 청심환을 먹고 나는 발작 당일 하루 온종일 잠을 청했다.

 

두통과 구토감이란 후유증이 처음 발작 때부터 같이 있었는지는 기억이 흐릿하다. 아침운동 하다 쓰러진 첫 발작 때는 의식을 회복하고 잠시 있다가 뉘늦게라도 학교에 갔던 기억이 있다.

 

기억나는 약 이름... '디란친'

내가 뇌전증으로 처음 병원을 간 게 대학을 휴학하고 나서 일로 생각된다. 대학 일 년을 다니고 등록금 마련이 안 되어서 휴학을 하기로 결정했는데 '군병역신체검사' 통지서가 집으로 날아왔다. 집이 시끄러워진 건 신체검사를 받고 입영통지문이 다시 배달되고 나서였다.

 

'군병역신체검사'를 받기 전 경련발작 때문에 병무청에 문의를 했지만 '그냥 검사 받으러 가도 그쪽에서 알아서 해줄 것'이란 말만 믿고 갔다가 1급판정을 받았다. 경련발작 때문에 군의관을 따로 만났지만 대기중인 다른 신검대상자들을 보니 모두가 갈색봉투에 담긴 의료진단서 한 부씩을 들고 있었다. 신체검사 인솔장교가 검진건물 뒤켠에서 대상자들 엉덩이를 까게 하고 겉으로 드러나는 이상이 있나 없나 대충 훑어보던 경험도 있다.

 

입영통지문을 받고 놀란 어머니가 나를 데리고 지역병무청을 찾아가 언쟁을 벌이고 국방부장관 이름으로 수차례의 민원을 보내는 소동이 일어났다. 겨우 재검 인정을 받았지만 그 후의 일도 순탄치 않았다. 서울로 올라가서 하룻밤을 자고 검사 받으러 간 다음날 아침에 발작으로 쓰러지는 바람에 구급차량에 실려 응급으로 병원에 갔다. 

 

뇌파검사를 했지만 의사는 오랫동안 관찰해 온 환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상당히 보수적인 의료진단서를 작성해 줬다. 군병역 재검사에서 만난 군의관은 서류부족을 이유로 재검판정을 내렸다. 휴학중이던 나에게 다시 대학교수님이 인우보증서를 써주시고 같은 과 예비역 형들이 나서서 내 발작 목격담을 민원으로 써주면서 겨우 현역병에서 벗어난 군 면제 판정을 받았다.

 

내가 뇌전증으로 처음 먹은 약은 '디란친'이었던 거 같다. 흰색의 캡슐약이었는데 가장 오래 먹었던 약이고 그 때는 의약분업 전이라 병원에서 준 약이 떨어지면 약국에서 내가 직접 가서 사왔던 경험 때문인지 아직도 이 약 이름은 기억에 있다.

 

'너는 간질이 아니야...' 그리고 한약, 월계수 열매

나는 아기였을 때 경기가 심했다고 한다. 경기를 심하게 자주 해서 어머니가 밤에 동네 약국문을 두드리기 일쑤였고 공연장에서 큰소리로 나오는 음악에 깜짝 깜짝 놀라서 경기를 하곤 했다고 한다.

 

내가 처음 뇌전증 발작을 하고 나서 어머닌 좀처럼 내 병을 인정하지 못하셨던 거 같다. '간질'에 대한 부정적 시선 때문인지 몰라도 '간질'이란 말 자체를 입에서 꺼내는 걸 극도로 꺼리셨다. 없는 돈에 뇌전증 때문에 나를 데리고 한약방에 가셨을 때도 그랬다. '간질'이란 얘기 대신 경련발작을 자주 해서 데려왔다고 하셨던 거 같다. 한의사가 나를 진료하고 약을 지어 집에 왔지만 나는 그 이후에도 경련발작을 일으켰다.

 

한동안 월계수 열매를 달여 먹은 적도 있다. 어머니가 '월계수 열매가 혈액순환에 좋다'는 말을 들으시고 때마다 월계수 열매를 사오셔서 내가 장복하게 했다. 그 때 월계수 열매라는 걸 처음 보았는데 원래 동그랗고 단단한 열매를 생강편처럼 얇게 자른 거였다. 솥에 월계수 열매 썰은 거를 일정 양 넣고 물을 부어 달이면 진한 팥물색으로 변했다. 식후에 한 잔씩 마셨는데 아무 맛도 안 나고 아주 강한 쓴맛만 느껴졌다.

 

컴퓨터의 '블루스크린'과 닮았다

뇌전증 발작으로 의식을 잃게 되면 쓰러지기 직전의 약간의 기억 뿐, 정작 나는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정신이 들고 나서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과 음식을 삼키면 토할 것 같은 울렁거림과 메슥거림, 경련발작으로 인한 약간의 근육통과 찰과상 등으로 경련발작의 고통을 느낀다.

 

오히려 경련발작을 목격하는 가족이나 친구들이 더 놀라는 거 같다. 의식을 깨고 나면 혼이 나간 듯한 걱정스런 표정의 어머니를 자주 보곤 했다. 내 경련발작을 옆에서 목격했던 한 친구는 무서웠다는 솔직한 속내를 내보이기도 했다. 몸이 뻣뻣해지면서 눈동자가 돌아가고 입안에서 침이 흘러나오는...

 

예전에 인터넷 한 커뮤니티에 간호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네티즌이 쓴 글을 본 적이 있다. 뇌전증 환자의 경련발작을 처음 보고 무서웠다는 감정을 좀 격하게 표현해서 토로하는 글이었다. 그 바람에 '환자를 돌보는 사람이 어떻게 이런 식으로 말을 하냐'며 핀잔을 하는 댓글도 여러 개 달려 있었다. 같은 뇌전증 환자로서 간호사라는 그녀의 글에 섭섭한 감정도 들었지만 가족들과 친구들의 반응을 생각하면 한편으로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남규리라는 배우가 예전에 가수로 활동할 때 있던 그룹 '씨야'의 무대공연 영상을 본 적도 있다. 씨야 뒤에서 함께 춤을 추는 여성 댄서 한 명이 공연중에 갑자기 쓰러져서 발작을 일으키자 동료 댄서와 공연스태프(staff)가 팔다리를 한 쪽씩 붙잡고 황급히 무대 뒤로 사라지는 장면이다.

 

나는 누군가 나에게 '뇌전증이 뭐냐'고 묻는다면 컴퓨터의 블루스크린 증상을 비유하는 게 제일 설명하기 쉬울 거 같다. 사람의 뇌는 평소 전기적 신호를 주고 받는다고 한다.(사람의 뇌파검사라는 게 아마도 이 전기적 신호를 증폭해서 검사하는 방법일 거다.) 이 중에 간질파가 발생하면 뇌전체에 과흥분이 생겨서 신체에 일시적 마비증세가 발생하는데 이것이 뇌전증 발작기제(機制)라고 알고 있다. 컴퓨터의 블루스크린(BlueScreen)도 컴퓨터 하드웨어 또는 소프트웨어상 여러가지 알 수 없는 원인으로 시스템 에러가 생겨서 갑자기 정상작동을 멈추는 현상이다. 일종의 컴퓨터가 일으키는 '마비증상'인 셈이다.

 

환자 본인이 뇌전증을 잘 이해해야 한다

나는 뇌전증에 대해서 오랜 시간 제대로 자각을 못했던 거 같다. 나 자신이 뇌전증 환자이지만 이 병을 잘 알지 못했고 처음 '디란친' 약을 먹을 때에도 약의 복용량과 시간을 철저히 지키면서 먹지 못했다. 가족들이 나를 '아픈 사람' 취급할 때 나도 그 시선을 오랜 시간 그대로 인정하면서 살았던 거 같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환자 스스로 자신이 지닌 뇌전증이란 병에 대해 잘 이해하는 게 가장 중요한 거 같다. 모든 병이 마찬가지이겠지만 자신의 병을 잘 알아야 그 다음 스텝을 밟을 수 있지 않을까?

 

뇌전증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일도 중요한 거 같다. 내 경험으로 보면 내가 뇌전증환자라는 사실을 밝히면 크게 두 가지 태도를 보이는 거 같다. 친구나 지인들의 경우는  '괜찮아. 요새 멀쩡한 사람이 어딨어? 누구나 한두 군데 다 아픈 구석이 있지!'라고 나를 지지해주는 척을 하지만 속으로는 당황한다. 취업을 위해 면접을 보는 경우 '글쎄... 간질발작을 하는 사람을 채용해도 될까?'하는 사장님의 의구심과 난처해 하는 표정을 느끼게 된다.

 

이런 경우 둘다 머릿 속에 어떤 강렬한 경련발작의 전형적인 이미지만 들어있을 뿐 실제 뇌전증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을 공산이 크다. 이런 경험을 한 두번 겪다 보면 타인을 제대로 이해시키기도 어려운 얘기를 점점 꺼내지 않게 된다.

 

나도 처음엔 용기를 내서 꺼내던 얘기를 점점 하지 않게 되었다. 그치만 돌이켜보면 내가 가진 뇌전증을 나 스스로 잘 알지 못했던 부분도 있고 타인에게 병을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지식과 노력은 부족한 채 어설픈 언변과 막연한 자신감으로 나를 애써 포장했던 부분도 있던 거 같다.

 

미국 정부의 개인정보불법수집을 폭로한 CIA · NSA 정보분석원 '에드워드 스노든' 의 실화를 영화화한 2016년작 《SNOWDEN》 한국포스터, 영화에서 뇌전증 질환을 앓고 있는 스노든의 모습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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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들의아빠 2020.01.18 23: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나라는 뇌전증환자들에 대하여 의료지원도 부족하고 편견이 심합니다.
    치매에 1조 쓰면서...뇌전증에 300억만 써도 정확한진단과 처방을 할수 있을텐데..